<아워 뮤직>을 관통하는 붉은색
<아워 뮤직>안에는 ‘지옥’, ‘연옥’, ‘천국’의 세 가지 에피소드들이 충돌하고 있다. 이 세 가지 에피소드들은 비서사적으로 이어져있으며 각각 전혀 다른 시공간을 보여준다. 때문에 보는 이들은 미로처럼 느껴지는 영화 속에서 길을 잃은 것 같은 느낌을 받는다. 물론 지옥편의 전쟁과 학살의 모습을 담은 영상들이 연옥편에서 유대인과 팔레스타인인간의 대화나 인디언의 모습으로 이어질 때 관객들은 영화가 전쟁의 역사를 다루고 있음을 짐작할 수 있다. 하지만 이것은 어디까지나 어렴풋하고 추상적인 관념으로만 남는다. <아워 뮤직>은 전쟁의 역사를 어떤 식으로 다루느냐의 문제를 보는 이들이 단번에 알아차릴 수 있도록 드러내놓지 않기 때문이다. 영화는 이미지들을 제시할 뿐, 그것을 조합하고 이해하는 의미화의 과정은 관객들 스스로에게 맡기는 태도로 일관한다.
고다르 식 몽타주의 주요한 핵심은 ‘만나지 않을 것들이 만나는 것’이다. 그는 영화는 관계없어 보이는 이미지들을 병치시키고 그것들이 하나로 강렬하게 연결되는 신비의 순간을 만들어간다. 고다르의 <영화사>가 20세기의 역사와 영화의 역사가 거울에 비친 듯 서로를 비추고 있는 신비한 순간을 이미지로 보여주었던 것처럼 <아워 뮤직> 역시 이와 같은 관점으로 해석이 가능하다. 영화는 전쟁의 역사를 재현하는 것이 아니라 구성해나간다. 인류가 죄지은 역사인 지옥편과, 현재를 살아가는 연옥편, 그리고 사후를 시각화한 천국편은 동떨어져 있는 세계이다. 이들을 구성, 연결시키는 방식에서 주목할 것은 영화 속에 눈에 띄게 자주 등장하는 ‘붉은색’이다. 붉은색 이미지들을 매개로 각각의 세계는 긴밀하게 연결되고 있는 것이다.
첫 번째 장 지옥편에는 픽션인지 다큐멘터리인지 불명확한 전쟁 영상들이 마구 뒤섞여있다. 폭발하는 수 만 가지 전쟁 무기들은 붉은빛 섬광을 뿜어내고 이 안에서 인간들은 붉은 피를 쏟아낸다. 서로 다른 사건 속에서 발생하는 이미지들은 모두 전쟁과 학살에 관련된 이미지라는 점에서 내적인 연결고리를 가지고 있다고 볼 수 있다. 이런 식으로 구성된 이미지 나열은 계속해서 스쳐 지나가버리기 때문에 전체를 이미지로 반응하고 기억할 것을 필요로 한다. 지옥편을 보면서 가장 머릿속에 각인된 이미지는 붉은색이었다. “이렇게 많은 사람들을 죽었는데 어떻게 아직까지 인간들은 살아남아있는 걸까?” 하고 묻는 내레이션처럼 지옥편에는 역사 속에서 끔찍한 죄를 저질러온 인간의 죄와 피가 붉은색 이미지들로 표상되고 있음을 느낄 수 있다.
연옥편은 유럽 문학제가 열리는 사라예보로 가기위해 공항에서 비행기를 기다리는 고다르의 일행을 보여주는 것으로 시작한다. 고다르와 통역관이 대화하는 중에 눈에 띄는 것은 두 인물이 두르고 있는 붉은색 목도리이다. 캐릭터에게 입힌 단순한 의상이라고 생각하고 지나갈 수도 있지만 이들의 붉은 목도리가 확연하게 드러나는 이유는 이전의 지옥편에서 10여 분간 지속적으로 보아온 붉은색들이 아직 잊혀 지지 않았기 때문일 수도 있다. 지옥편의 붉은색을 연옥편 안으로 끌고 들어온 고다르와 통역관은 일종의 ‘전령’ 역할로서 영화 속 사라예보 안으로 들어가는 첫 번째 인물들이다. 이들의 행보를 쫓는 카메라는 현재 사라예보의 거리, 시장, 건물들과 사람들의 일상적인 풍경을 담아낸다. 카메라가 이 풍경들을 꾸준히 지켜보는 동안에는 오래전에 벌어졌던 지나가버린 역사들, 특히 지옥편에서 스쳤던 전쟁과 학살의 ‘붉은 면면’들이 연상된다.
고다르 일행을 따라 사라예보 도심 안으로 들어온 카메라는 사람들이 지나가는 일상적인 거리를 담는다. 고정적인 시선으로 사라예보의 풍경을 주시하고 있던 카메라는 어린 소녀를 따라간다. 소녀가 들어가는 곳은 폐허가 된 도서관 내부이다. 보스니아 내전이 남긴 자취 혹은 지옥편에서 보았던 전쟁의 참혹한 흔적들 안으로 붉은 점퍼를 입은 소녀가 저벅저벅 걸어간다. 벽면 곳곳이 부서져 있고 잿빛 콘크리트만이 남은 건물의 넓은 공간 안에는 책들이 어지럽게 쌓아올려져 있고, 책상 위에 앉아 무언가를 적고 있는 남자가 보인다. 이때 인디안 남녀가 등장한다. 역시 붉은 셔츠를 입고 있는 인디안 남성이 영어로 말하는 내용 중에서는 “우리는 레드라고 놀림 받아왔지만”이라는 대목이 있다. 붉은 옷을 입은 아이를 따라 들어온 과거 전쟁의 흔적이 안에서 붉은 옷을 입은 인디언들(정확하게 정체를 알 수 없지만)은 여전히 화합하지 못하고 있는 인류에 대해 일갈한다.
이 시퀀스는 역사와 마주하는데 있어 <아워 뮤직>이 어떤 태도를 취하는지 짐작할 수 있는 지점이다. 먼저 시퀀스의 첫 부분에 아이가 입은 붉은색 점퍼는 아이의 몸 전체를 거의 뒤덮고 있다. 여기서 붉은색은 단순히 의복의 색깔이라기보다는 아이의 걸음으로 인해 움직여지고 있는 하나의 이미지로 역할 한다. 이 이미지는 이전의 지옥편에서 보았던 붉은색에 대한 잔상이다. 아이를 따라 들어와 폐허가 된 잿빛 도서관을 카메라가 천천히 훑는 사이 아이 즉 카메라를 이끌었던 붉은 이미지는 사라진다. 대신 카메라는 과거가 아닌 현재, 지금 여기에 남은 역사의 자취들을 바라보고 있다. 수많은 책들은 마치 버려져있듯 뒤섞여 언덕을 쌓고 있고 그것을 바라보며 책상 위에 앉은 남성은 말없이 계속해서 무언가를 적는다. 조금 전 일상적인 거리 풍경으로 채워지던 화면은 어느새 이렇게 비일상적인 공간 안을 담아낸다. 지금 현재 사라예보 안에서 찾아낸 과거의 흔적 동시에 과거로의 어떤 틈을 보여주고 있는 것이다. 그리고 잠시 동안 사라졌던 붉은 색은 곧 유령처럼 등장하는 인디언의 셔츠 색깔을 통해 이어진다. 그리고 그가 백인들에게 ‘레드’라고 불렸던 과거를 스스로 밝힐 때 인디언 캐릭터 역시 인디언 개인으로서의 차원을 넘어서 하나의 붉은색 이미지로 재탄생한다.
그런데 이들의 모습이나 이들이 하는 말을 화면 속의 인물들은 전혀 듣지 못한다. 인디언이 전하는 붉은 이미지는 관객들에게만 전달되고 있다. 마치 유령이 떠돌고 있는 것 같은 비일상적이고 초현실적으로 보여지는 공간 안에서 인디언의 붉은색 이미지는 역사 속에서 착취 당해온 원주민의 과거가 지옥편에서 지나쳤던 학살과 죽음의 붉은 피를 다시금 연상시킨다. 동시에 이것은 영화가 연옥편에서 지속적으로 문제 삼고 있는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 간 분쟁의 문제로 확대되기도 한다. 다시 말해 영화가 구성해내는 이미지는 가령 역사 속에서 인디언과 팔레스타인이 가진 비극적인 과거를 별개의 문제로 구분 짓지 않는 것이다. 고다르의 영화 <여기와 저기>가 팔레스타인 역사 문제를 현재의 유럽 안으로 끌어들여와 보여주었던 것처럼, <아워 뮤직>은 팔레스타인 역사 문제 혹은 인류가 저지른 죄의 역사(피의 역사)를 ‘붉은색 이미지’라는 하나의 덩어리로 구성하여 현재 사라예보의 공간 안에 두고 있다.
도서관 밖으로 나온 카메라는 사라예보의 거리 풍경을 다시 한 번 비춘다. 거리의 사람들은 붉은 의복 색깔을 통해 붉은 이미지를 띄고 있으며, 이어지는 밤거리에서 자동차의 붉은색 헤드라이트나 네온사인이 보인다. 이쯤에서 관객들은 지옥편에서 “우리는 모두 죄를 지었다”라고 언급되는 내레이션을 떠올려볼 필요가 있다. 연옥편의 곳곳에서 지속적으로 눈에 띄는 붉은색 옷을 입은 사람들의 모습은 비록 참혹한 과거의 역사와는 아무 상관없이 살아가고 있지만 이들은 과거가 남긴 흔적과 긴밀하게 묶여있으며 쉽게 외면할 수 없음을 나타내는 듯하다. 그리고 연옥편은 ‘붉은색의 이미지화’를 통해 이 긴밀한 관계의 시각화를 계속해서 구성해나간다.
그리고 연옥편의 중반즈음 유대인계 여학생 올가가 새로운 주요 인물로 등장한다. 그녀가 유대인계인 점은 영화가 역사를 구성하고 이미지화하는 시선을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 간 문제로 좁혀 들어가기 위한 방식이다. 올가가 항상 붉은색 숄더백을 들고 다니는 것은 역시 붉은색 이미지를 의도적으로 ‘이어가고’ 있음을 뜻한다. 영화감독 고다르의 강연 중 역사를 돌이켜보기 위해 눈을 감아야한다는 말에 유일하게 눈을 감는 올가는 <아워 뮤직>이 보이지 않는 역사를 보기 위해 이미지를 구성하려는 태도를 영화 속에서 실천하고 있는 인물이다. 실제로 그녀는 스스로 찍은 사라예보의 풍경들(무엇을 찍었는지 정확하게 언급되고 있지는 않지만)을 고다르에게 전하기도 한다.
그녀는 지금의 사라예보 안에서 유대인과 팔레스타인, 삶과 죽음의 경계, 평화라는 문제를 고민한다. 하지만 이러한 그녀의 문제의식은 붉은색의 죄인 표식을 지니고 있지만 자각하지 못하는 대부분의 사람들, 죽음에 대한 문제를 대수롭지 않게 쉬이 넘어가버리는 사촌, 그녀의 눈에 보여 지는 흔적들에 무관심해 보이는 영화감독 고다르 등의 냉정한 주변 인물들에 의해 혼자만의 것이 되어버리고 만다. 영화 속에서 인상적인 장면 중 하나는 붉은색 숄더백을 들고 멀리서부터 걸어오는 올가를 카메라가 고정적인 위치에서 바라보는 장면이다. 카메라는 피사계 심도 원리에 의해 대상이 사정거리 안에 들어왔을 때 명확한 초점으로 올가를 비출 수 있다. 이 장면이 그리는 것처럼 올가는 오직 자기가 볼 수 있는 사정거리 안만을 바라보는 사람들, 과거의 흔적이나 인류가 죄를 씻고 나아가야할 방향에 대해 고민하지 않는 사람들의 틈새 안에서 몹시 외로워 보인다.
고다르는 사라예보에서 다시 그가 사는 곳으로 되돌아온다. 붉은색을 포함해 형형색색의 꽃을 가꾸고 있는 정원은 다소 차갑고 건조한 인상이었던 사라예보의 색감과는 달리 따뜻하고 활기찬 느낌을 전한다. 그런데 이때 고다르가 받는 전화는 올가의 부고소식이다. 극장 안에서 예루살렘의 평화를 위해 함께 죽을 동료를 부르짖던 그녀는 경찰의 저격에 맞고 쓰러진다. 경찰에게 올가의 외침은 그저 테러행위로만 여겨졌을 것이다. 그들에게 위험한 폭발물처럼 보였을 그녀의 붉은색 숄더백 안에는 사실 책 몇 권이 들어있을 뿐이었다. 흥미로운 것은 영화가 이 상황을 그대로 재현하지 않음이다. 카메라는 붉은 꽃이 핀 정원을 배경으로 앉은 채 수화기를 들고 있는 고다를 롱숏으로 가만히 바라본다. 올가의 소식은 수화기에서 전해지는 음성으로만 들려온다. 인류를 위해 대신 십자가를 지고 목숨을 희생한 예수 그리스도처럼 올가는 예루살렘의 평화를 외치다가 쓰러진다. <아워 뮤직>이 지옥, 연옥, 천국이라는 성서 속에 등장하는 배경을 설정한 것, 붉은색이 가지고 있는 종교적 의미, 구원과 희생을 외치는 인물 등의 소재들은 영화가 역사의 속죄와 구제를 바라는 ‘종교적 측면’을 드러내는 것으로도 보여 진다. 이러한 측면에서 올가가 죽는 마지막 순간은 어쩌면 주요하게 다룰 필요가 있는 결정적인 장면으로 재현시킬 수 있었을 것이다. 하지만 영화는 이 사건에서도 마찬가지로 여전히 재현이 아닌 구성을 추구한다. 올가가 마지막 순간에 떨어뜨린 붉은색 숄더백은 정원에 핀 붉은색 꽃들의 이미지로 전해진다. 그녀의 외침에 함께한 사람이 단 한명도 없었다는 음성만으로 연옥편의 사라예보는 그저 좀 전에 스쳐지나간 공간이 아니라 과거를 냉정하게 외면하는 여전히 황폐한 차가운 도시로 다시 읽히도록 하는 듯하다. 사라예보와 연옥의 풍경은 곧 여전히 속죄하지 못하고 있는, 구원이 필요로 하는 가련한 곳이었다.
연옥편은 강가의 녹지대를 배경으로 시작한다. 연옥편의 마지막, 붉은 꽃의 이미지가 되었던 죽은 올가는 천국편에서 붉은색 드레스를 입은 채 녹지대를 걸으며 다시 등장한다. 그런데 천국 안을 돌아다니는 올가가 마주치는 것은 총을 든 백인 군인들이 지키고 서있는 철조망이다. 천국의 모습으로는 쉽게 연상되지 않는 이러한 의외의 모습은 언뜻 영화가 연옥편과 마찬가지로 천국마저도 디스토피아적 절망으로 그리는 게 아닌가 하는 의아함이 들게 한다. 지옥편에서 처음 붉은색의 강렬한 이미지를 만들어낸 것이 다름 아닌 총과 군인들이었음을 떠오르게 하기 때문이다. 그런데 올가가 철조망을 넘어가는 것은 어렵지 않은 일이었다. 군인은 올가의 팔에 손도장을 찍어주는 행위로 출입을 허락한다. 비록 천국 안에서 이 생경한 대상들의 정체가 명확하게 판명되지는 않지만 어찌되었든 여기서 그들의 행동은 그저 우스꽝스럽게 보이며 지나쳐갈 뿐이다. 그리고 올가는 또래의 젊은 남녀들이 붉은색 계통의 옷을 입고 책을 보거나 공놀이를 하고 있는 앞을 걸어간다. 카메라가 이곳을 수평 트레블링 숏으로 따라갈 때, 올가를 비롯한 화면 안의 인물들은 또 다시 하나의 붉은색 이미지를 만들어낸다. 녹지대의 초록빛에서 인물들이 걸치고 있는 붉은색 의상들이 보색관계에 의해 더욱 부각되고 있는 듯하다. 고결과 숭고를 상징하는 붉은색 꽃들로부터 이어지는 천국 안의 붉은빛은 영화가 올가와 같은 죽음을 거쳤을지도 모르는 이 몇몇 젊은이들을 향해 지지의 뜻을 내비치고 있음으로 해석할 수 있다.
지옥, 연옥, 천국을 관통하는 <아워 뮤직>의 붉은색 이미지는 마치 붉은색 눈덩이를 연상시킨다. 지옥편에서 뒤섞이며 뭉쳐지기 시작한 눈덩이는 연옥편의 곳곳으로 이어지며 불어나고 있고 천국편에서 가장 크고 확연한 붉은색 이미지 덩어리를 만들어내기 때문이다. 이렇게 근거 없어 보이는 시공간을 신비롭게 연결시키는 고다르 식 몽타주의 영화적 순간은 에이젠슈테인의 ‘충돌 몽타주’ 기법과 닮아있기도 하다. 에이젠슈테인은 서로 다른 공간에서 벌어지는 비인과적인 숏들이 한 시퀀스 안에서 충돌하며 특정한 의미를 은유하는 충돌 몽타주를 구성한다. 개별 요소들을 충돌시킴으로 대중들에게 역동성과 관념성을 전달하는 방식이 고다르의 몽타주와 일정 부분 맥을 같이하기 때문이다.
그런데 <아워 뮤직>에서의 시선은 충돌 몽타주의 시선과 분명한 차이를 보인다. <아워 뮤직>은 대중들에게 어떤 이데올로기적 이상으로 나아가기 위해 부단히 노력해야 함을 추구한다기보다는 이미지를 모으고, 조합하는 과정을 통해 역사를 재구성해나가려는 태도로 일관한다. 그 과정에서 연속되고 있는 붉은색 이미지는 ‘보이지 않는 비가시의 역사를 보이도록 하는’ 매개의 역할을 하고 있다. 그렇다고 이 매개가 마치 에이젠슈테인의 영화 속 체제의 효과적인 표현물로서 특정한 한 가지 의미를 시각화하고 있는 것은 아니다. <아워 뮤직>에서 고다르가 올가의 DVD 혹은 올가의 죽음에 명확한 반응을 내비치지 않는 것처럼, 천국편에서 총을 든 백인 군인이 등장하고 있는 모호하고 초현실적인 생경한 풍경처럼, 영화 속 붉은색 이미지는 어떤 한 가지 의미를 단정하고 있지 않다. 붉은색은 지옥편 안에서 인류 역사의 끔찍한 죄악이면서, 영화 속 사라예보의 현재를 탐사하게 하는 시선이자, 이곳에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 간의 분쟁 문제를 끌어오고 있다. 또한 영화는 올가의 마지막 외침과 붉은색 숄더백이 경찰에게는 테러, 감독에게는 붉은색 장미꽃과 연결되는 숭고한 이미지가 되는 양가적인 리액션을 보여주기도 한다. 이처럼 <아워 뮤직>의 구성 속에서 이미지들은 그것을 조합하고 이해하는데 있어 다면적인 해석이 가능하다. 이것은 고다르가 영상과 이미지를 통해 역사를 재현이 아닌 구성하는데 있어서 영화 속에서도 언급되었듯 ‘불가능성의 가능성, 가능성의 불가능성’을 염두에 두는 태도와 긴밀하게 연관되어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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