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0. 12. 4.

프로이트, <예술, 문학, 정신분석> 중「도스토예프스키와 아버지 살해」

 프로이트는 도스토예프스키를 ‘작가였고 신경증 환자였고 인간 본성에 대한 탐구자로서 윤리주의자였으며 또 죄인이기도 했다.’라고 말한다. 이 글에서 프로이트는 도스토예프스키의 고통스러운 유년시절과 평생을 짓눌렀던 ‘아버지 살해’에 대한 죄의식이 그의 행동, 성격 그리고 작품에까지 밀접히 관련해있음을 정신분석적 태도를 통해 밝혀나간다. 두 부분으로 나눠지는 글의 첫 부분은 도스토예프스키의 전반적인 성격에 관한 것이다.
 도스토예프스키는 소년시절부터 ‘당장 죽을 것만 같다는 느낌을 갖고 있었고 또 이런 느낌으로 인해 실제 죽음과 유사한 상태에 빠지는’ 발작 증세를 보였다. 때문에 그는 스스로를 간질 환자로 여겼다. 하지만 프로이트는 이것을 뇌의 손상으로 고통 받는 ‘신체적 간질’이 아니라 신경증 환자가 갖는 ‘정서적 간질’로 구분한다. 이 신경증세의 근원은 여느 소년들과 마찬가지로 아버지를 죽었으면 하는 대상으로 삼는 오이디푸스 콤플렉스이다. 아버지의 죽음을 원했던 죄의식에 대한 자기 응징이 발작 증세를 통해 드러나는 것이다.
 그런데 프로이트는 도스토예프스키의 신경증을 오이디푸스 콤플렉스에 ‘양성 소질’까지 더해진 합병 증상이 발생한 경우로 가정한다. 도스토예프스키의 소설 속에 ‘억압된 동성애로밖에 달리 설명할 방법이 없는’ 남자에 대한 우정과 특별한 애착의 상황들이 등장하는 것은 그가 강한 양성 소질을 가지고 있었음을 입증하는 것이다. 양성 소질의 아이는 아버지(남성성)에 대한 거세위협을 느낄수록 여성적인 태도 속으로 숨고 자신을 어머니의 자리에 놓으면서 아버지의 사랑의 대상이 되려고 한다. 그러나 아버지 존재에 대한 두려움인 응징으로서의 거세공포와 여성적 위치를 취하면서 아버지의 사랑을 얻는 대가로서의 거세 공포 둘 다 결국 아들에게는 끔찍한 위험으로 다가온다. 즉 양성 소질을 가진 아이는 더욱 큰 두려움 속에 억압받으며 악화된 신경증을 겪을 수 있다.
 아들이 아버지와 자기 자신을 동일시하는 과정 또한 도스토예프스키가 가졌던 신경증세의 원인이다. 동일시의 과정에서 자아 속에는 그와 대립하는 초자아가 자리를 잡는다. ‘만일 아버지가 거칠고 폭력적이라면 초자아는 이러한 특징들을 물려받고 억압되어야만 했던 자학적 태도는 초자아와 자아의 관계 속에 다시 형성된다.’ 자아와 초자아의 관계에서 초자아는 가학적이고 자아는 자학적(수동적, 여성적)이다. 이때 자아는 응징 받고자하는 강한 욕구를 초자아가 가하는 가혹한 처벌을 통해 만족시키려한다. 이러한 신경증세 도중 도스토예프스키는 죽었으면 했던 유난히 거칠고 폭력적이던 아버지가 실제로 죽는 대사건을 겪는다. 그러자 ‘이제 아버지가 너를 죽이고 있는 중이다’라는 초자아(죄의식)의 가학이 ‘죽음의 엄습’(죽은 아버지와 동일시)과 같은 정서적 간질 발작을 일으킨 것이다.
 글의 두 번째 부분은 위의 분석들을 토대로 도박에 탐닉했던 도스토예프스키의 심리를 다룬다. ‘신경증 환자에게 죄의식은 손으로 만지는 것으로 대체되는데, 노름을 하며 지게 된 빚이 바로 그것이었다.’ 죄의식을 자학적으로 받아들이는 도스토예프스키에게 도박은 자기 응징의 또 다른 수단이었다. 도박으로 돈을 몽땅 털리고 극도의 빈곤상태에 빠질 때 그는 스스로에게 욕설을 퍼붓고 아내가 자신을 경멸하도록 부추김으로써 ‘가벼워진 의식’으로 다음날 다시 도박을 했다. 죄의식이 스스로 가한 응징에 의해 해소되는 때는 한편으로 도스토예프스키의 문학 창작을 가장 잘 진전시키는 동기가 되기도 했다.
 프로이트는 노름벽과 자위행위를 등가관계로 본다. 언제나 실패로 끝나고 마는 노름은 ‘견딜 수 없는 유혹, 다시는 하지 않겠다는, 그러나 언제나 거짓으로 끝나버리는 각오’인 자위행위의 강박과 ‘끊을 수 없는 죄의식’이라는 맥락에서 같다. 도스토예프스키는 대단한 지성이자 윤리주의자였음에도 불구하고 아버지를 죽이고 싶었던 무거운 죄의식을 벗어나지 못한 채 평생을 자위의 강박적 반복과 같은 고통 속에서 살았던 죄인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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