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딪히고 뒹구는 몸들이 보여주는 것
영화는 맨몸을 한 소년들의 야성적인 움직임들로 시작한다. 이들이 모래 바닥을 뒹굴며 상대를 지독히 괴롭히고 몸에 상처를 내는 모습에 관객들은 생경한 느낌을 받는다. 외딴 섬 속 어촌 공동체가 배경인 <레스피로>는 이국적이고 특별한 그들만의 일상을 담고 있다. 영화가 이곳을 설명하는 방식은 함께 살아가며 성장하는 인물들의 움직임을 지켜보는 것이다. 어른이고 아이고 할 것 없이 부딪히고 뒹구는 몸들의 움직임 하나하나는 곧 공동체 구성원들이 서로 마찰하며 결속해가는 과정을 그려낸다.
남편의 구속에 괴로워하는 그라찌아는 그녀를 둘러싼 가부장적 틀 안에서 자유를 갈망한다. 하지만 남편은 그녀가 옷을 벗고 바닷물 위에 그냥 떠 있으려는 움직임조차 거부한다. 이런 환경에서 그간 억압된 감정들의 폭발로 발작을 일으키는 그라찌아의 또 다른 움직임 역시 물리적 힘을 지닌 남편에 의해 금세 제압되어버리고 만다. 이 장면에서 아내를 위에서 아래로 때려눕히는 남편의 움직임은 공동체가 구성한 테두리를 자꾸만 벗어나는 그라찌아를 다시 안으로 끌어들이려는 강압을 보여 준다. 남편은 행여 아내가 그들을 지탱하는 힘인 공동체의 안정을 깨뜨릴 수 있음을 우려하고 경계하는 것이다.
남편의 우려는 현실이 되지만 그것은 그라찌아가 아닌 스스로에 의해서다. 떠돌이 개들을 과격하게 학살하며 소동을 일으킨 그의 감정적인 행동은 오히려 공동체의 불안을 조장해 그라찌아가 떠날 틈새를 만들었다. 이렇게 아내의 부재를 스스로 자초한 남편은 의외의 나약함을 드러낸다. 급격히 의기소침해진 채 동료들과 몸을 부딪치며 일하던 역동적 움직임들이 누그러지는 것이다. 자연히 공동체의 일상은 술에 취해 잠든 남편의 모습이나 해안가에 주저앉아있는 사람들의 정적인 움직임들로 채워지고 분위기 또한 침체된다. 그런데 이때 마을 사람들은 그들만의 방식으로 담담히 위기에 맞선다. 종교축제를 위해 목재로 탑을 쌓아 올리고 불을 지피는 행위에서 이들 몸의 움직임은 다시금 공동체를 결속시키는 부딪침이자 함께 아픔을 딛고 또 앞날을 살아가려는 신체적 소통이다.
바다 속에서 기적처럼 그라찌아와 재회한 남편은 자신을 보자 놀라 도망치려는 아내를 필사적으로 붙잡는다. 눈에 띄는 움직임은 그가 전처럼 육중한 몸을 거칠게 휘두르는 것이 아니라 그라찌아의 몸을 부드럽게 감싸며 움직이는 것이다. 어느새 아들과 이웃들이 둘 주변을 둥글게 에워싸며 이것은 모두 하나로 뭉쳐져 서로를 보듬는 형태가 된다. 앙각으로 바라본 이 풍경은 마치 하나의 생명체를 연상시킨다. 수많은 다리들의 움직임은 신체의 각 부분이 아니라 거대한 생명체가 가진 촉수들의 군무처럼 보이며 치유와 회복의 따뜻한 순간을 그린다. 영화의 마지막 장면이자 공동체의 재결속을 형상화한 몸들의 움직임은 밤바다의 푸른빛까지 더해지며 영화 전체에서 가장 큰 에너지를 뿜어내는 신성하고 역동적인 이미지를 구현해낸다.
<레스피로>는 소규모의 공동체 사회에서 마찰을 빚던 개인들이 치유와 성장을 통해 다시 결속해가는 특별한 일상의 면면을 꾸준히 지켜보고 있다. 여기에 현지 로케이션과 현지 배우 기용을 통한 리얼리즘 양식의 사용은 더욱 현실감을 부여한다. 그렇게 영화를 지켜보는 도중에는 부딪히고 뒹굴다 결국 하나가 되는 몸들이 그리는 이미지들을 곳곳에서 발견할 수 있다. 영화는 마지막 풍경까지도 그것을 그저 가만히, 오랫동안 비추고 있을 뿐이지만 가라앉아있던 그녀를 물 위로 띄워내는 공동체의 강렬한 에너지를 관객들은 느낄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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