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1부 공간적 기원
- 도시를 바라보는 예민한 눈
「파사젠베르크」에서 19세기의 지붕 덮인 아케이드 상가는 벤야민이 주목하는 중심적 이미지이다. 근대자본주의를 꿈꾸는 집단의 무의식에 대한 정확한 물질적 복제물이었기 때문이다. 아케이드에서는 상품 물신주의와 사물화로 대표되는 부르주아의식의 오류들과 유행, 매춘, 도박과 같은 부르주아의식의 유토피아적 소망을 발견할 수 있었다. 또한, 19세기 말에는 아케이드가 근대적 대도시의 지표로 읽히기도 했다. 「파사젠베르크」의 주 무대인 아케이드 역시 벤야민 스스로도 인식하고 있듯, 그의 정신적 나침반의 요새였던 모든 도시들—나폴리, 모스크바, 파리, 베를린—에서 발견된다.
첫 번째 요새 나폴리에서 벤야민은 이 도시 공간이 아직 근대자본주의를 구조화하는 경계 이를테면 공적 영역과 사적 영역, 노동과 여가, 개인과 공동체 사이의 경계들이 확립되지 않았음을 포착한다. 마르크스주의 이론에서 말하는 이행사회는 이 도시 안에서 공간적 무정부상태, 사회적 뒤섞임 그리고 비영속성의 이미지들로 나타난다. “건물과 활동이 상호 침투한다, 규정이나 각인을 삼간다.” 이렇게 이탈리아 남부에서 근대적 사회관은 붕괴하는 전근대적 질서의 껍데기 위해 불안정하고 불규칙하게 세워졌다. 여기서 프롤레타리아의 자의식은 정치적이라기보다는 오히려 연극적이다. 원주민들은 폼페이 폐허 관광과 폼페이 폐허 모형이 팔리는 곳을 돌며 관광객들에게 돈을 달라고 손을 내민다. 우리가 볼 수 있는 것은 고대사회도 아니고 근대사회도 아닌, 급속한 도시의 붕괴에 의해 촉발되고 강화된 즉흥 문화이다. 이곳을 걷는 벤야민은 모종의 실험을 진행한다. 어떻게 자기가 포착하는 이미지들이 관념적인 문학양식을 거스르며 해석 될 수 있는지를 보여주는 것이다. 이미지들을 주관적 인상이 아닌 객관적 표현으로 승화시키며 현상—건물, 사람의 몸짓, 공간배치—은 일종의 언어로 읽히도록 한다. 벤야민은 이러한 구체적인 표현들을 통해 사회 구성체가 도시 안에서의 여러 가지 경험들을 감지하도록 하고 사회사적 가독성을 획득해나가길 의도한다. 이 같은 실험은 「파사젠베르크」의 방법론으로서 중요한 의미를 갖고 있다.
두 번째 배경은 모스크바로 벤야민은 이곳에서 러시아 혁명의 현장을 눈으로 직접 보고자했다. 나폴리와 마찬가지로 모스크바의 구체적인 삶의 모습은 시골과 도시가 숨바꼭질하는 이행기의 도시로 묘사되어있다. 앞서 고대에서 근대로의 이행이었던 나폴리의 역동적 혼란이 연극적 의미로 그려졌다면, 모스크바의 이행성은 사회주의로의 이행이다. 그런데 이러한 모스크바의 이미지는 양면적이었다. 당시 신경제정책(NEP)은 신흥 유산 계급을 창출했고, 혁명은 사물화 되어 혁명을 수행한 이들은 이제 지배를 위한 위험을 가하기 시작했다. 눈 덮인 도시의 거리를 채색하는 노점상의 잡화, 장식물, 박제품 등의 상품들은 사회 변혁의 판타지 에너지를 사물화 된 형태로 간직하고 있었다. 벤야민은 공산당에 투신할 생각으로 러시아에 왔지만 그가 접촉한 예술가와 지식인은 모두 이와 같은 상황에서 딜레마를 느끼는 좌파 진영의 문화 비판 세력이었다. 벤야민을 포함한 그들은 변질된 혁명당에 투신하면 인텔리겐치아의 문화혁명 과업이 억압받을 것임을 알고 있었다. 하지만 과업을 위한 테크놀로지의 새로운 형식을 개발할 자유가 주어진 곳은 부르주아의 도시인 베를린과 파리였다. 자유 없는 권력이거나 권력 없는 자유 이 두 가지 선택지 사이에서 벤야민은 독립적 입장을 가진 ‘재야 좌익’이라는 대안을 생각해낸다.
다음으로 등장하는 도시 파리는 벤야민이 오랫동안 머물면서 아케이드 프로젝트의 초기 메모를 집필한 곳이다. 그의 초기 메모는 파리 최대의 아방가르드 문학운동인 초현실주의의 영향을 보여준다. 특정한 규칙 없는 메모의 배열에는 아케이드, 유행, 키치, 도박, 거리, 보들레르, 프루스트 그리고 꿈 집, 꿈꾸는 집단, 꿈 이미지 등이 포함된다. 이들 목록은 도시 현상에 매혹됐던 초현실주의자들의 태도를 암시한다. 초현실주의자는 도시 현상을 객관적인 것으로 경험하는 동시에 꿈으로 경험했다. 1927년에 벤야민이 초현실주의에 관해 쓴 논문은 초현실주의로 대변되는 급진적 자유개념과 물질세계의 세속적 계시에 대한 벤야민의 열광을 표현한다. 한편, 벤야민의 논문은 초현실주의적이고 허무주의적인 무정부주의를 비판하기도 한다. 이러한 논지는 초현실주의적 사유가 반란과 혁명을 결부시킬 수 있는 반면에 구성 지도 혹은 규제의 측면은 부족하다는 점을 지적하는 것이다. 초현실주의가 현실을 꿈으로 인식했다면, 「파사젠베르크」는 독자를 꿈에서 깨우기 위해 역사를 환기하고 그것을 현실로 직면하도록 한다.
「파사젠베르크」가 가진 교육적 계획의 배경이 되는 마지막 장소는 벤야민이 유년을 보냈던 베를린이다. 1928년부터 벤야민이 영원히 독일을 떠나는 1933년까지 그는 이곳에서 논문을 쓰면서 문인의 사회적 상황을 논하는 서평 형식을 정치 포럼으로 변형시키길 시도한다. 이 중에서 주목할 만한 활동은 라디오라는 대중매체에서 진행했던 혁신적인 작업이다. 벤야민의 라디오 프로그램은 베를린이라는 공통된 경험을 중시했다. 주요 대상층은 청소년이었으며 그들이 도시의 풍경과 역사에서 파생된 문학 텍스트를 사회사적 표현으로 읽을 수 있게 한다는 교육적 의도를 가지고 있었다. 이들 프로그램은 권위주의와는 거리를 둔 채 청취자가 반감을 가지지 않도록 재미와 유머를 섞어 교훈을 주는 방식을 취했다. 가령 프로그램의 취지이자 핵심인 교훈이 역사적 일화나 모험담, 작가의 전기로부터 자연스럽게 흘러나오도록 하는 것이다. 전통적으로 하층계급은 교육을 받으면서 정신적 굴욕을 느꼈다. 이점에서 이야기꾼 벤야민은 아이들과 하층계급에 공모하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그는 라디오라는 새로운 의사소통 매체가 본질적으로 진보적이고 반 엘리트주의적인 가능성을 가지며 서민의 문화형식을 확립할 수 있다고 보았다. 이처럼 벤야민은 모스크바에서 대안으로 생각했던 ‘재야 좌익’의 역할을 실제로 수행했다. 그러나 같은 시기에 나치 또한 라디오라는 대중매체를 이용하여 벤야민의 작업과는 상반되는 정치문화를 배양했다. 파시즘은 현실을 무대에 올리는 아방가르드적 실천을 역전시켰다. 정치적 스펙터클 뿐 아니라 역사적 사건 자체를 무대에 올리며 현실을 하나의 ‘연극’으로 탈바꿈하는 것이다. 이러한 상황은 벤야민에게 개인적 위기로 경험되었고 그는 파시즘이라는 배경막이 드리워진 상황에서 현재를 탈 신화화할 역사를 현시한다는 「파사젠베르크」의 교육적 계획을 더욱 절박하게 붙잡는다. 아케이드 프로젝트는 “나의 모든 투쟁과 나의 모든 사유의 무대”라는 고백과 함께.
「파사젠베르크」가 가진 교육적 계획의 배경이 되는 마지막 장소는 벤야민이 유년을 보냈던 베를린이다. 1928년부터 벤야민이 영원히 독일을 떠나는 1933년까지 그는 이곳에서 논문을 쓰면서 문인의 사회적 상황을 논하는 서평 형식을 정치 포럼으로 변형시키길 시도한다. 이 중에서 주목할 만한 활동은 라디오라는 대중매체에서 진행했던 혁신적인 작업이다. 벤야민의 라디오 프로그램은 베를린이라는 공통된 경험을 중시했다. 주요 대상층은 청소년이었으며 그들이 도시의 풍경과 역사에서 파생된 문학 텍스트를 사회사적 표현으로 읽을 수 있게 한다는 교육적 의도를 가지고 있었다. 이들 프로그램은 권위주의와는 거리를 둔 채 청취자가 반감을 가지지 않도록 재미와 유머를 섞어 교훈을 주는 방식을 취했다. 가령 프로그램의 취지이자 핵심인 교훈이 역사적 일화나 모험담, 작가의 전기로부터 자연스럽게 흘러나오도록 하는 것이다. 전통적으로 하층계급은 교육을 받으면서 정신적 굴욕을 느꼈다. 이점에서 이야기꾼 벤야민은 아이들과 하층계급에 공모하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그는 라디오라는 새로운 의사소통 매체가 본질적으로 진보적이고 반 엘리트주의적인 가능성을 가지며 서민의 문화형식을 확립할 수 있다고 보았다. 이처럼 벤야민은 모스크바에서 대안으로 생각했던 ‘재야 좌익’의 역할을 실제로 수행했다. 그러나 같은 시기에 나치 또한 라디오라는 대중매체를 이용하여 벤야민의 작업과는 상반되는 정치문화를 배양했다. 파시즘은 현실을 무대에 올리는 아방가르드적 실천을 역전시켰다. 정치적 스펙터클 뿐 아니라 역사적 사건 자체를 무대에 올리며 현실을 하나의 ‘연극’으로 탈바꿈하는 것이다. 이러한 상황은 벤야민에게 개인적 위기로 경험되었고 그는 파시즘이라는 배경막이 드리워진 상황에서 현재를 탈 신화화할 역사를 현시한다는 「파사젠베르크」의 교육적 계획을 더욱 절박하게 붙잡는다. 아케이드 프로젝트는 “나의 모든 투쟁과 나의 모든 사유의 무대”라는 고백과 함께.
방치된 20세기의 아케이드에서 과거는 자유로이 연상되는 이미지이자 오래 전에 잊혀 진 이미지로 다가오게 된다. 아케이드 프로젝트는 이 외적이고 물리적인 경험을 통해 개인적 기억과 집단적 역사 사이를 환기하는데 주목적이 있다. 벤야민은 도시의 사물들, 지나간 세기의 유물들을 잊혀져버린 과거를 해독시켜줄 상형문자로 본다. 역사의 흔적은 이런 물신 속에 화석화된 형식으로 잔존하기 때문이다. 이렇게 벤야민은 ‘있었던 그대로의 삶’이나 ‘기억된 삶’이 아니라 ‘잊혀진’ 삶으로서 집단적 역사를 현시해야 한다는 생각을 이어나간다.
「파사젠베르크」는 네 도시를 예민하게 바라보았던 벤야민의 여행기라고도 할 수 있다. 낯설고 색다른 공간을 접한 순간 느껴지는 생경함 속에서 벤야민은 과거의 기억과 역사 그리고 현실을 환기하고자한다. 아케이드 프로젝트의 공간들 안에서 벌어지는 제스처들은 <파사젠베르크>라는 제목의 영화 혹은 문학작품을 떠오르게 했다. 주인공 벤야민이 도시를 걸으며 겪는 삶의 여러 단상들은 마치 ‘장면’처럼 구체적인 시각화로 담겨져 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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