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1. 4. 9.

기 드보르의「스펙타클의 사회」1,2,3장 발제문

□제 1장 분리, 완성되다

 “스펙타클은 하나의 이미지가 될 정도로 축적된 자본이다.” 자본이 지배하는 모든 사회들에서 삶 전체는 스펙타클이라는 거대한 축적물로 나타난다. 스펙타클은 인간 삶의 각각 측면에서 떨어져 나온 이미지들을 공통의 흐름 속에 융합한다. 여기서 공통의 흐름이란 자본주의 체제가 가진 지배, 피지배의 권력관계이다. 이 공통의 흐름 안에서 스펙타클은 단순히 이미지들의 집합이 아닌 이미지들에 의해 매개된 사람들 간의 사회적 관계인 것이다. 스펙타클의 형식과 내용은 모두 기존 자본주의 체제의 조건과 목표를 총체적으로 정당화하는 지배적인 삶의 모델들이다. 외양의 지배를 선언하며, 모든 인간적 삶과 사회적 삶이 한갓된 외양이라는 부르짖음은 스펙타클이 만들어낸 허위와 판타지의 표상 아래 종속되어버린 현시대의 군상이다. 즉 물질적으로 번역된 세계관인 스펙타클은 인간의 삶과 깊숙이 연관된 ‘대상화 된 세계관’으로 지칭할 수 있다.
 이러한 스펙타클의 기원은 세계의 통일성 상실에서 기원한다. 스펙타클은 지본주의 시장경제가 일군 분업의 산물이면서 동시에 계급지배의 총사령기관인 현대국가와 나눠질 수 없는 모순을 가진다. 분리야말로 스펙타클의 처음이자 끝이라고 할 수 있는데 스펙타클은 끝없이 분리해가면서 사회적 분업, 제도, 계급을 형성시키려고 움직이기 때문이다. 시장은 시장의 주된 목적인 발전을 위해 부단히 기계적인 분업화를 유지시키고, 계속적인 시장의 확장을 꾀한다. 결국 스펙타클은 세계를 프롤레타리아화 했다. 이러한 노동 속에서 자유로운 활동은 상실되고 프롤레탈리아는 현대적 스펙타클의 거대한 확장 안에서 어떤 의미로든 해방을 이뤄낼 수 없는 것이다. 인간사회에 대한 스펙타클의 압도는 여기서 멈추지 않는다. 스펙타클은 상실과 분리의 파편들을 다시 완성시킴으로서 총체적으로 표현한다. 스펙타클은 분리된 것을 재결합하지만 분리된 상태 그대로 재결합한다. 앞서 스펙타클을 거대한 축적물이라 했던 것처럼 스펙타클은 견고하지만 기형적으로 재결합 된 형태이다. 하지만 이 견고한 덩어리는 분리된 것을 재결합하는데 분리된 상태 그대로 재결합되어있다. 따라서 그 틈새는 인간 소외와 고립이 발생하는 것이다. 이것은 진정한 의미로서 세계의 통일이 아니다. 스펙타클의 압도가 이끌어낸 분리현상이 축적되며 결합, 완성될수록 인간 삶의 본질은 점점 더 분리되어간다. 사회 속에서 스펙타클은 인간 소외를 계속해서 창출해내며 고착화한다.

□2장 스펙타클로서의 상품

 상품은 사회적 삶을 점령한 하나의 권능으로 나타났다. 스펙타클은 상품이 사회적 삶을 점령하게 만든 계기이다. 인간 활동 속의 모든 것을 흡수하고 그것들이 가졌던 고유의 가치를 오로지 사물화로서 장악해버린 스펙타클의 움직임은 우리가 우리의 숙적인 상품을 인지하도록 한다. 스펙타클이 가시화하는 ‘현전하면서도 동시에 부재하는 세계’는 바로 삶에 속하는 모든 것을 지배하는 상품세계이다. 상품세계는 이처럼 외양으로서 보여 지며 그 자신의 모습을 뽐낸다. 상품 외양에 대한 물신은 스펙타클의 사회가 인간에게 놓은 덫이다. 그것에서 비롯될 상실과 소외의 위험을 상품은 은밀히 감춘 채 실재하는 환상으로 조작해낸다. 스펙타클은 바로 이런 환상의 보편적 표현물이다. 현대 자본주의 체제 안에서 상품형태는 양이라는 범주와 철저히 동일하다. 질을 배제하는 이 발전은 양적 충만함을 넘어서 지구 전체를 하나의 세계시장으로 포괄하려 한다. 이전 원시경제의 상품부문은 잉여 생필품을 뜻했다. 당시의 상품생산은 독립된 생산자들 사이에서 이루어지는 다양한 상품들의 교환을 의미했고, 그것은 오랫동안 수공업 생산에 머물러 있으면서 주변적인 경제적 기능을 갖고 있었다. 그렇지만 상품생산이 스펙타클의 원흉인 대규모 상업, 자본축적이라는 자본주의 체제의 사회적 조건들을 만나면서 그것들은 경제에 대해 총체적 지배력을 발휘하기 시작했다. 그러자 경제 전체는 상품이 이 정복 가운데서 이미 드러냈던 모습과 똑같은 것, 즉 양적 발전 과정이 되었다.
 이 경제적 힘의 끊임없는 확장은 1장에서 언급했듯 세계를 프롤레타리아화 하며 인간노동을 상품노동, 임금노동으로 변형시켰다. 이러한 풍요는 생존이라는 일차문제는 해결했다. 그러나 자본주의가 자극하는 인간의 만족에는 계속해서 내성이 생긴다. 따라서 시장은 더욱 움직이고 확장하기 위해 보다 높은 수준의 상품이 끊임없이 제시되어야만 하는 구조를 갖추게 되었다. 경제는 세계사회를 변혁시키지만, 그것은 오직 경제 다시 말해 자본 축적을 위한 세계로의 진출이자 지배일 뿐이다. 사회가 자신이 경제에 의존하고 있음을 발견하자마자 경제는 사실상 사회에 의존하게 된다. 그러나 앞으로 경제라는 3인칭은 1인칭이 되어야 한다. 여기서의 주체는 오직 사회 내부에서의 투쟁으로부터만 출현할 수 있으며, 이것의 존재 가능성은 역사 생산자로서의 계급투쟁과 그 결과에 달려 있다.

□제 3장 외양 내에서의 통일과 분리

 스펙타클은 현대사회와 마찬가지로 통일되어 있는 동시에 분리되어 있다. 사회와 마찬가지로 스펙타클은 분리 위에 통일을 구축한다. 겉으로 드러난 분리는 통일되어 있는 반면 겉으로 드러난 통일은 분리되어 있다. 이 모순을 포괄하고 있는 보편적 체제는 이 지구 전체를 자신의 활동 영역으로 삼는 독특한 운동, 자본주의이다. 스펙타클을 가진 사회는 저개발 지역들을 스펙타클의 사회로서 지배한다. 현대사회는 스펙타클을 수단으로 하여 이미 각 대륙의 사회적 표면에 침투했다. 스팩타클은 지배계급의 강령을 규정하고 그 강령의 형성을 관장한다. 스펙타클은 의사소통과 행정의 일정한 전체주의적 전문화를 과시하지만 전체 체제의 기능이라는 점에서 보면 이 전문화는 스펙타클 과업의 ‘세계적 분업’에 해당할 뿐이다. 스펙타클적 과업들의 분업은 기존질서 전체와 특히 그 발전의 지배적인 축을 굳건히 보전해나간다. 스펙타클의 두 얼굴은 자급자족을 열망하는 개발국 현지에 보호주의 장벽의 가면을 쓴 채 스펙타클의 물결 속으로 시장을 접수하고야 마는 것이다.
 흩어져있던 스펙타클은 상품들의 풍요와 더불어 또한 현대 자본주의의 자유로운 발전과 더불어 모습을 드러낸다. 다양한 인기상품들이 사회를 만족시키기 위해 상호 모순되는 계획들을 동시적으로 주장한다. 실제 소비자들은 고유한 전체에 부합하는 특질을 매번 잃어버리고 외양 즉 상품의 파편들만을 직접적으로 접할 수 있게 된다. 만족은 모든 것의 소비로부터 온다고 하던 자본주의의 주장은 곧 허상이 되는 것이다. 스펙타클을 위해 그대로 멈춰 있는 것은 아무 것도 없다. 스펙타클이 영원한 것이라며 제공하는 것은 모두 변화에 기반을 두고 있고 그 기반과 더불어 변화하지 않을 수 없다. 스펙타클에 의해 공언되는 비현실적 통일성은 자본주의적 생산양식의 현실적 통일성이 의존하고 있는 계급분리를 은폐 한다.
 세계의 프롤레타리아로 하여금 세계의 건설에 참여하도록 강요하는 것은 다시 말해 인간을 이 세계의 건설에서 분리 소외시키는 것이었다. 인간들을 그들 자신의 민족적 경계로부터 해방시켜 오직 자본 아래 하나로 결집하는 것은 곧 그들을 서로 떼어놓는다. 자본주의 상품경제는 스펙타클의 허위와 판타지적 권력을 이용해 궁극적으로 사회의 고착화된 비자유마저도 생산해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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