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0. 12. 4.

이만희의 <휴일> 리뷰

무기력한 도시의 정서로 그려낸 디스토피아

 모래바람이 안개처럼 뒤덮인 어두운 도시를 방황하는 무표정하고 무기력한 사람들이 있다. 휴일인 일요일에도 휴식이 허용되지 않는 가난한 노동자들과 그러한 노동조차 할 수 없는 무기력한 룸펜들은 황폐한 회색빛 도심을 떠돌며 그저 내일이 오기만을 바랄 뿐이다. 영화는 괴기스런 고딕 이미지를 풍기는 사각 앵글의 첨탑으로 시작한다. <휴일>의 도시는 마치 고딕 소설의 배경처럼 어둡고 황폐하다. 친밀과 안정을 주는 동물들이나 단란한 가족의 모습, 심지어 구두닦이 노동자 소년들을 빼고는 아이들조차 등장하지 않는다. 이러한 공간에서 내일도 오늘과 다름없을 줄 아는 영화 속 인물들의 비관은 현재의 모습이 곧 내일 혹은 미래의 모습임을 암시하는 가공의 이상향 즉 디스토피아를 그리고 있다.
 일반적으로 디스토피아 작품과 사상은 적극적인 현실비판이 두드러지기 마련이다. 현대인이 무의식중에 받아들이는 위험한 경향들을 지적함으로써 미래사회를 경고하는 것이다. 그러나 이러한 맥락과 <휴일>의 디스토피아는 차이가 있다. 주인공 욱이 떠도는 도시(디스토피아)는 사실 관객들에게 어떤 경고나 메시지를 주입시키지 않는다. 내일도 오늘과 같을 것이라는 비관에 ‘왜?’ 라는 질문은 영화 표면에 명확하게 나타나지 않으며 욱은 자신이 왜 이런 삶을 사는지 무엇이 자신을 지배하고 있는지에 대해 묻지 않는다. 무기력한 소시민인 그가 걱정하고 바라보는 것은 도시의 부조리가 아닌 지금 당장의 커피 값과 택시비 그리고 애인의 낙태수술비용이다. 이렇게 현실비판이 아닌, 처지에 대한 비관만을 내뱉는 주인공은 사랑하는 이의 죽음도 그저 바라볼 수밖에 없을 뿐 끝까지 아무런 행동도 하지 못한 채 메말라가며 우울함과 답답함, 연민의 정서를 불러일으킨다.
 하지만 줄곧 무기력으로 일관하는 <휴일>의 우울함을 단순히 파토스를 이끌어내는 장치로 단정할 수는 없다. 물론 불가능한 것을 이루려하다가 비극이 되는 통상적인 멜로드라마처럼 인물을 둘러싼 억압이 ‘심리적 리얼리즘’을 이끌어내는 식의 정서와는 차이가 있다. 그러나 당시 한국의 시대적 상황 속에서 이렇게 명확하게 드러나는 장치들의 구현은 불가능했다. 따라서 <휴일>의 감독 이만희는 무드, 정서에 대한 천착을 통해 ‘이만희 모드’라는 대안을 구성했던 것이다.1) 이러한 독특한 형식의 영화를 군사독재와 통제라는 한국의 특수한 사회적, 역사적 맥락에 비추어 그 정서적 기능의 효과를 탐구해볼 필요가 있다.  
 군사정권을 사회적 쟁점 측면에서 보면 사회의 질서나 가치관을 전부 전복시키고 선거권을 박탈하며 국민들에게 광범위한 긴장과 불안의 사회적 심리를 심어준 시기였다.2)자유롭게 말할 수 없다는 의식의 팽배 속에 지식인들과 예술가들은 ‘양심선언’과 ‘환멸’을 표출했으나 비합리적인 공포정치는 이를 통제와 강압으로 묵살시켰다. 군사통제가 영화에 미친 영향은 대표적으로 1963년 통과된 ‘영화법’이 17년간 지속되었음을 들 수 있다. 이때, 앞서 말했듯 영화 속에 사회비판적 리얼리즘을 이끌어내고 의식을 일깨우는 장치들의 구현은 불가능했으며 영화 내용이 시책에 부흥하는지의 여부가 평가되었다. 당시 새롭게 등장한 장르로서 문예영화를 들 수 있는데 군사정권과 종래 예술영화의 중간적 절충 형식으로 예술파 감독들이 많이 동원되었다.3) <휴일> 역시 문예영화의 일종이었지만 이만희 감독은 인물과 서사를 돋보이게 하는 통념에서 벗어나 시각적 감정적 동요와 흥분을 이끌어내는 방식으로 현실조명을 관객의 역할로 넘긴다. 예컨대 주인공 허욱은 군사 독재 시대에 스스로 행동하려는 의식이 거세당한 무기력한 남성성을 표상한다. 리얼리즘 영화의 주인공이 가진 ‘비판’은 <휴일>의 욱에게서 군사독재 아래 싹이 잘린 ‘비관’의 모습으로 변질되었고 자신의 손으로 무언가를 하려고 하지 못하고 현실 즉 명령과 통제에 굴복하는 나약한 인간의 모습으로 그려지는 것이다.
 이만희의 대안적 형식은 저항할 수 없이 강압적인 ‘영화법’의 통제 아래서 현실비판을 위한 개별적 상징성들을 배제한다. 대신 영화의 상황과 배경 등의 디스토피아적 시각성과 인물이 가진 극도의 우울함과 나약함, 무기력한 모습은 ‘왜?’에 대한 물음을 관객들 스스로 하도록 한다. 그가 만들어내는 정서는 저항할 수 없이 강압적인 영화법의 통제 속에서 표면적으로 드러나는 것이 아닌 보이지 않는 감정들을 리얼리즘화 함으로서 구현해내는 독특한 ‘무드’4)이다. 끝내 탄생의 축복이 억압된 채 죽고 마는 욱의 아이와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 미래를 두려워하는 욱의 디스토피아는 어떤 희망도 빛도 없는 막막한 공간이다. 그러나 이 디스토피아적 영화는 여러 가지 사회, 역사적 함의가 얽힌 하나의 복합체가 되어 진부하고 과장된 상징들의 주입 대신 관객들 스스로 ‘느끼게’ 하는 중요한 질문을 던지고 있다.

 1) 김소영. 『한국영화 최고의 10경』, 현실문화, 2010, p.124
 2) 한국예술연구소 저, 『이영일의 한국영화사 강의록』, 소도, p.83
 3) Ibid., p.85
 4) 김소영, op. cit., p.1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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