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독한 차가움으로 쏘아보는, 혹은 호기심에 가득한 채 아니면 극심한 증오와 경멸의 눈초리로. 파스빈더의 영화들이 보여주는 양식화된 연기는 흥미롭다. 인물들의 행동과 말투가 보여주는 예민함, 날카로움은 마치 내 촉각을 자극하는 듯하다. 이 학교에 들어올 때 입학시험 문제가 파스빈더의 영화 <베로니카 포스의 갈망>이었다. 비록 ‘시험 문제’였지만 영화는 내게 무척 흥미롭게 다가왔었다. 수업을 통해 읽은 그의 자서전 『불안은 영혼을 잠식한다』는 충격과 자극의 연속으로 일생을 살았던 한 예술가의 매력적인 삶이 그가 만든 작품들과 어떻게 연결되는지 그려볼 수 있게 했다.
저자는 파스빈더가 ‘자신이야말로 배우들이 바라는 대로 억압할 줄 아는 몇 안 되는 감독이라고 생각했을 것’이라고 평한다. 파스빈더는 잔인함, 무례함, 폭력성을 드러내며 다른 사람들이 자신에게 공격적인 태도를 취하는 것을 기꺼이 받아들이고 즐긴 사디스트였다. 그는 배우들을 억압할 때 비로소 그들의 복종과 의존도가 더욱 높아진다고 생각했다. 파스빈더는 그의 사디스트적 성격이 그에게 도움을 필요로하는 배우들에게 아무 말도 해 주지 않고 불안하게 함으로써 감독에게 확실히 의존하게 하고 영원히 두려워하도록 만들었다. 심지어 파스빈더는 이러한 의존을 심화시키는 극단적인 방법으로 배우들에게 연기력을 향상시킬 거라며 마약을 권해 그들을 중독자로 만들고 더욱더 의존하도록 조종하기도 했다.
이 사실을 알고 나니 내가 흥미를 느꼈던 그들(배우들)의 표정이 마약 중독자들의 표정이자 실제 고통일 수 있다는 생각이 들었고 극단을 달리는 파스빈더의 영화들이 더욱 매력적으로 다가왔다. 그런데 파스빈더는 배우들을 얼마나 복종시킬 수 있나 시험해 보기 이전에 먼저 스스로를 복종시켰다. 자신을 어디까지 몰고 갈 수 있나 알아내기 위해 약물 복용과 과식, 폭음을 하며 생존력을 극단까지 몰고 갔던 파스빈더의 기질은 ‘죽음에 가까이 갈 때 다른 어느 때보다 더 살아 있다는 것을 느끼는 자동차 레이서나 스턴트맨’과 닮아 있다.
이러한 파스빈더의 기묘한 취향과 기질은 그의 영화 속에 나타나는 도덕적인 퇴행이나 갈등과도 관련한다. 더글라스 서크의 영화로부터 영향을 받은 파스빈더는 “내가 서크의 영화로부터 깨달은 사실은 관객들이 영화를 진지한 자세로 보지 않으며 따라서 그들의 흥미를 끌 만한 방식으로 줄거리를 전개해 나가야 한다는 것이다.”라고 말한다. 서크의 경우처럼 파스빈더는 관객들에게 강한 충격을 전하기 위해 극심한 갈등과 폭력으로 빚어지는 자신만의 양식과 어조를 만들어나간다. 개인(이방인)과 집단 사이의 관계에 몰두했던 그는 독일에 남아 있는 나치주의의 잔재를 심각하게 다룬 작가로 평가받는다. 파스빈더의 영화 속 고독과 공허함으로 고통 받는 개인 즉, <불안은 영혼을 잠식한다>의 여주인공은 절망적인 상태 집단에 대항한다. 또한 개인이나 집단의 자기 방어는 극단적인 공격성으로 변한다. 이러한 싸움은 개인이 파괴되거나 아니면 개인이 스스로를 파괴함으로써 끝난다.
파스빈더는 “훌륭한 감독이라면 관객이 불만스러워하는 해피엔딩을 구성할 줄 알아야한다. 관객은 뭔가 잘못되었다는 것을 안다. 그렇게 끝날 수는 없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라며 영화에 대한 판단을 관객 스스로에게 맡긴다. 그의 ‘독일 역사 3부작’을 비롯한 여러 작품들은 개인과 집단 간의 갈등이라는 고정적인 주제에 서크 식의 ‘멜로드라마’요소를 결합시켜 현대 독일을 고발하는 정치적 변주를 보여주고 있다. 또한 감독 파스빈더는 자신의 개인적인 삶을 자신의 창작물인 영화 그리고 자신을 둘러싼 독일 사회로 점점 영역을 확장해나가면서 창작자로서 영화와 삶 사이의 경계를 허물어나간다. 그리고 그 방식이 선뜻 어울리지 않는 ‘멜로드라마’였다는 특수성은 파스빈더를 더욱 흥미롭게 하는 점이다. 나는 파스빈더의 영화와 자서전을 보며 다양한 면면에서 적잖은 흥분 감을 느낀다. 따라서 그의 영화 몇 편만을 볼 게 아니라 전반적인 필모그래피를 살피는 공부를 할 계획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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